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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스트라

7대

다비트 라일란트
다비트 라일란트

David Reiland

제7대 예술감독 · 상임지휘자 2022년 1월 15일

Artistic Director · Chief Conductor

2022년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제7대 예술감독으로 선임된 다비트 라일란트는 한국을 넘어 국제적으로 발돋움하고자 하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당찬 포부를 보여준다. 라일란트는 벨기에 출신으로 브뤼셀과 파리, 잘츠부르크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전세계를 무대로 활동 중인 지휘자다. 다시 말해, 오늘날 클래식 음악계가 요구하는 전형적인 ‘코스모폴리탄’적인 음악가인 것이다. 다양한 문화예술에 익숙하고 더 넓은 시야로 참신한 레퍼토리를 선보이는 라일란트는 급변하는 2020년대 예술환경 속에서 능동적으로 대응하고자 하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지휘자라고 할 수 있다.

라일란트는 2018년부터 프랑스 메스 국립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 스위스 로잔 신포니에타의 수석 객원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그는 독일 뒤셀도르프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슈만 게스트’로 활약하고 있는데, 슈만이 뒤셀도르프에서 오랜 시간 활동했고 현재는 슈만의 이름을 딴 음악대학이 있을 만큼 슈만이 뒤셀도르프 음악계의 상징적인 인물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현지 음악계가 라일란트의 음악적 역랑을 높이 평가하고 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 외에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 툴루즈 카피톨 국립오케스트라, 도쿄 메트로폴리탄 오케스트라 등 국제적인 오케스트라를 지휘했으며, 2023년 프랑스 문예공로훈장인 ‘슈발리에’를 수훈하며 세계 전역에 그의 존재를 각인시키고 있다.

라일란트의 음악은 프랑스적이되 독일적인 감수성을 지녔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베를리오즈, 드뷔시, 라벨에 이르는 프랑스 음악에 강점을 보이면서도 슈만, 슈트라우스로 대표되는 19세기 독일 음악에서도 기존의 전형적인 접근방식과는 또 다른 청각적 쾌감을 선보이고 있다. 이러한 라일란트만의 독특한 음악세계는 사이먼 래틀, 마크 엘더, 블라디미르 유롭스키, 로저 노링턴 등 수많은 거장 지휘자들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만들어졌다. 특히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에게 영향을 받은 라일란트의 모차르트 해석은 세계 각지의 평단으로부터 격찬을 받은 바 있다.

6대

정치용
정치용

Chung Chi-Yong

제6대 예술감독 · 상임지휘자 2018년 1월 13일

Artistic Director · Chief Conductor

제6대 예술감독 정치용은 명실상부 한국 클래식 음악계를 대표하는 지휘자 중 한 사람이다. 세계적인 명문 음악학교인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에서 거장으로 존경받는 미하엘 길렌을 사사하며 지휘법과 지휘자로서의 마음가짐을 배운 그는 오스트리아 문교부 장관상을 수상하며 일찍부터 클래식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유서 깊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부지휘자를 거쳐 라이프치히 방송교향악단, 뮌헨 심포니 오케스트라, 프라하 방송교향악단, 러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 세계 각지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국제적인 경력을 쌓았고, 귀국 후에는 서울시립교향악단 단장과 창원시립교향악단, 인천시립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를 역임하였다.

교향곡부터 오페라, 발레, 뮤지컬, 심지어는 국악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레퍼토리를 소화하는 것으로 유명한 정치용은 특히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최고의 윤이상 스페셜리스트다. 말년의 윤이상을 수차례 직접 만나 음악적 교분을 나누었으며 교향곡 제1번과 제2번, 관현악곡 ‘화염속의 천사’, 오페라 ‘류퉁의 꿈’, ‘나비의 미망인’ 등 윤이상의 주요작품을 한국 초연했다. 오페라 지휘에도 탁월한 능력을 선보여 ‘호프만의 이야기’, ‘코지 판 투테’, ‘마술피리’, ‘피가로의 결혼’, ‘라보엠’, ‘카르멘’, ‘리골레토’, ‘라 트라비아타’ 등을 지휘했고, 특히 2007년에 국립오페라단에서 특별 기획한 알반 베르크의 오페라 ‘보체크’를 국내 초연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제6대 예술감독으로서 정치용의 가장 큰 업적은 전임 예술감독이었던 임헌정과 함께 다진 음악적 내실을 안정적으로 계승하고 또 다른 발전을 위한 방향성을 명확히 제시했다는 점이다. 굴지의 음반사인 데카(DECCA) 레이블을 통해 음반을 발매하는 한편, 창작곡 연주에도 힘을 기울였으며 다양한 기획의 연주를 통해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존재가치를 관객들에게 각인시켰다. 또한,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모든 예술계가 사실상 멈춰버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리더십을 발휘하며 훌륭하게 예술감독직을 수행했다.

5대

임헌정
임헌정

Lim Hun-Joung

제5대 예술감독 · 상임지휘자 2014년 1월 26일

Artistic Director · Chief Conductor

“음악적 텍스트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연주 속으로 깊숙이 몰입하는 것, 지휘자 임헌정이 언제나 강조하는 ‘신조’다.”

- 경향신문 문학수 부국장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제5대 예술감독 임헌정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 국내 최고의 지휘자 중 한 사람이다. 미국 매네스 음대와 줄리아드 음대에서 공부를 마치고 1985년에 귀국한 그는 곧바로 서울대학교 지휘전공 교수로 임명되어 후학을 양성하던 중 1989년 신생 단체였던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제1대 상임지휘자로 취임해 25년간 오케스트라를 이끌며 괄목할만한 오케스트라의 성장을 이끌어냈다.

지휘자 임헌정의 혁신과 도전은 이미 오래 전부터 한국 클래식 음악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서울대학교 작곡과에 재학 중이던 학생 시절 스트라빈스키의 ‘병사의 이야기’를 한국 초연하며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는 거의 연주되지 않던 쇤베르크, 베베른, 버르토크 등의 20세기 관현악 작품을 다수 초연하며 20세기 관현악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임헌정의 가장 주목할 만한 업적은 1999년부터 약 4년에 걸쳐 한국 최초의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에 도전하며 이른바 ‘말러 열풍’을 일으켰다는 점이다. 그의 과감한 도전은 오늘날 말러 교향곡이 국내 오케스트라들의 보편적 레퍼토리가 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헌정이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제5대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것은 2014년의 일이다.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오케스트라 중 하나로 거듭나고 있었던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는 임헌정의 취임과 함께 음악적 내실을 더욱 단단히 다졌다. 철저하고 이성적인 작품 분석 위에 창조적 해석이 세워진다는 임헌정의 굳은 신념 아래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 연주에 도전했고 실황 음반 발매를 통해 한국 교향악 역사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또한, 상주 작곡가 제도를 도입해 오케스트라가 과거의 음악을 재현하는 역할 뿐만 아니라 동시대 음악을 알리고 보급하는 역할 또한 수행하고 있다는 점을 관객들에게 깊게 각인시켰다.

4대

최희준
최희준

Choi Hee-Chuhn

제4대 예술감독 · 상임지휘자 2011년 1월 27일

Artistic Director · Chief Conductor

2011년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제4대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지휘자 최희준은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국립음대 지휘과에서 디플롬을 수여 받은 뒤 최고연주자 과정을 졸업하고, 드레스덴 국립음대 개교 이래 최초로 지휘과 최고연주자 과정을 졸업하였다. 이후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예나 필하모니 등의 오케스트라와 뮌헨 국립가극장, 하이델베르크 오페라극장 등에 객원 지휘자로 무대에 올랐고 작센 주립극장의 수석지휘자로서 다수의 오페라와 발레를 지휘하는 등 독일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그의 활동에 대해 독일 유력 일간지인 <베를리너 모르겐포스트>는 “연주자들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지휘”라는 호평을 하기도 했다.

귀국 후 최희준은 촉망받는 젊은 지휘자로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서울시립교향악단, KBS교향악단,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등 국내 주요 오케스트라의 객원 지휘자로 초청받아 자신만의 뚜렷하고 명쾌한 해석을 관객들에게 각인시켰으며, 특히 말러와 쇼스타코비치를 비롯한 대편성 관현악에 큰 강점을 보이며 애호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또한 그는 미래 세대 양성에도 관심을 기울여 한양대학교 지휘전공 교수로 차세대 지휘자들을 육성하고 있다. 이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전임 감독이었던 홍연택, 박은성도 한양대학교에서 후학을 가르쳤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흥미로운 대목이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전임 감독들과 비교해 최희준이 가졌던 가장 큰 강점은 취임 당시 30대 후반의 비교적 젊은 지휘자였다는 점이다. 최희준은 베테랑 지휘자들의 관록과는 또 다른, 젊은 지휘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새롭고 참신한 기획을 선보이며 국내 클래식 음악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나의 지휘 철학은 악보만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과 함께 음악을 즐기는 것이다.”라는 그의 말처럼 관객들은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유기적으로 호흡하며 함께 연주를 만들어갔으며,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최희준이 연주하는 말러, 쇼스타코비치를 듣기 위해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은 큰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3대

박은성
박은성

Park Eunseong

제3대 음악감독 · 상임지휘자 2007년 12월 1일

Music Director · Chief Conductor

제3대 음악감독 박은성은 세계적인 명문 음악학교인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한국인 최초로 지휘를 전공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는 한국의 대표적인 1세대 지휘자 임원식에게 지휘를 배웠으며, 오스트리아 유학 시절에는 베를린 오페라 하우스의 음악감독이었던 거장 오트마 주이트너의 문하에서 교향곡, 오페라, 발레 등 다양한 지휘법을 습득했다. 귀국 후에는 1990년부터 2년간 서울시립교향악단 상임 지휘자를 역임했으며, 2001년부터 7년간 수원시립교향악단을 이끌며 악단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 한편 한국지휘자협회를 창설하고 초대회장직을 역임하며 한국인 지휘자들의 교류와 협력에도 앞장서는 등 의욕적으로 활동했다.

박은성은 한국 오케스트라를 국제적으로 소개하는 것에도 큰 관심을 기울였다. 특히 1991년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와 함께한 뉴욕 카네기홀 100주년 기념 초청 연주회는 <뉴욕타임스>로 ‘주목할 만한 교향악단’이라는 호평을 받았으며, ‘2003 아시아 오케스트라 위크’, ‘2004 독일 국제 환경음악제’ 등에서 수원시립교향악단을 지휘하였다. 또한, 2002년에는 KBS교향악단을 이끌고 한국인 지휘자로는 최초로 북한을 방문, 평양 봉화예술극장에서 KBS교향악단의 단독공연과 북한 조선국립교향악단과의 합동 공연을 지휘하며 국내외 언론에서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서 박은성은 오케스트라의 안정적인 사운드 구축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2대 음악감독 김민의 뒤를 이어받아 2006년부터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를 이끌기 시작한 그는 음악감독 취임 이전부터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깊은 인연을 맺어온 인물이기도 하다. 창단 직후부터 객원 지휘자로 가장 많은 무대에 섰으며, 한양대학교에서 초대 음악감독인 홍연택의 뒤를 이어 지휘전공 교수로 재직하기도 했다. 이러한 인연을 바탕으로 박은성은 단원들과 긴밀히 소통하고 더욱 참신한 레퍼토리를 선보이는 등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고유의 사운드를 만들어내기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했다.

2대

김민
김민

Kim Min

제2대 음악감독 2005년 1월 25일

Music Director

제2대 음악감독 김민은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역대 음악감독 중 유일한 비 지휘자 출신이다. 그는 서울대학교와 독일 함부르크 음악대학을 졸업한 후 1979년부터 1992년까지 KBS교향악단의 악장으로 재직했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한 교육자이기도 했다. 또한, 북독일방송교향악단, 베를린방송교향악단의 단원을 역임했으며 1977년부터 2008년까지 매년 여름마다 독일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의 초청을 받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 활약하며 오케스트라 강국인 독일 오케스트라계의 흐름을 꾸준히 관찰했다.

김민은 국제적으로 존경받는 음악인이기도 하다. 폴란드와 한국의 음악 교류에 기여한 공로을 인정받아 폴란드 정부가 수여하는 ‘폴란드 문화훈장’과 이탈리아 정부가 수여하는 ‘A Life of Music’ 증서 및 메달을 수여 받았으며,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총감독 볼프강 바그너로부터는 ‘20년 연속 음악제 참가 감사패’를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비에니아프스키 콩쿠르, 센다이 콩쿠르 등 권위 있는 콩쿠르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김민이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하게 된 것은 초대 음악감독이었던 홍연택이 물러난 후 구심점을 잃고 흔들리고 있었던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를 다시 본궤도로 올려놓을 적임자였기 때문이다. 김민은 오랜 세월 오케스트라 연주자로 활동한 경험을 통해 선진적 오케스트라 시스템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었으며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학장,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을 역임하는 등 예술 행정에 대한 감각까지 갖춘 인물이었다. 특히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초대 음악감독이었던 홍연택과는 KBS교향악단의 음악감독과 악장으로 깊은 인연을 나눈 바 있어 초대 음악감독의 신념을 계승하면서도 발전적 변화를 꾀할 수 있는 최적의 인물이었다. 김민은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예술의전당 상주단체 지위를 확고히 하며 재정적 안정을 가져옴과 동시에 예술의전당 기획 프로그램 연주를 전담하도록 하는 등 공연의 폭을 더욱 확장했다.

1대

홍연택
홍연택

Hong Yeon-Taek

창단, 제1대 음악감독 · 상임지휘자 1985년 3월 30일

Founded in 1985,
Music Director · Chief Conductor

한국 교향악 역사에서 지휘자 홍연택을 떠올릴 때 가장 어울리는 단어는 ‘열정’일 것이다. 1928년 황해도 은률군에서 태어난 홍연택은 서울대학교 작곡과를 졸업한 후 다양한 활동을 하며 음악가의 꿈을 키웠다. 1950년대 후반부터는 당시 우리나라의 양대 교향악단이라고 할 수 있는 KBS교향악단과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부지휘자가 되어 각 교향악단의 음악감독이었던 임원식과 김생려를 보좌했다. 지휘를 전문적으로 공부한다는 것 자체가 낯선 개념이었던 시기, 미국에서 지휘를 공부하고 돌아온 선배들을 보좌한다는 것은 홍연택에게 소중한 기회였으며 지휘자로서의 열정을 불태우고자 결심하게 된 중요한 계기이기도 했다. 이후 홍연택은 오스트리아와 미국에서 유학을 하며 클래식계 최전선의 흐름을 몸소 경험했으며 1972년에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여 KBS교향악단의 음악감독으로 취임, 본격적인 지휘자 활동을 시작했다.

홍연택의 가장 눈부신 업적은 1985년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전신인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를 창단해 한국 교향악 역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그는 민간 오케스트라의 활성화를 통해 한국 클래식 음악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더욱 다변화시킬 수 있다는 신념으로 헌신적인 노력을 했다. 말러, 브루크너, 바그너 등 당시 한국에서는 잘 연주되지 않았던 작곡가들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소개했으며, 미국 탱글우드 음악제를 벤치마킹한 ‘용평 서머 뮤직캠프’ 개최, 음악 영재를 조기에 발굴하여 육성하기 위한 부설 영재교육원 설립 등 한국 음악 생태계의 선순환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펼쳤다.

대부분의 오케스트라가 국공립으로 운영되며 정부나 지자체 지원에 의존하던 이 시기, 민간 오케스트라를 운영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하지만 홍연택은 회원제를 정착시키고 다양한 후원을 이끌어내는 등 오케스트라의 안정화를 위해 헌신했다. 특히 1989년부터 1998년까지 10여 년 동안 이어진 쌍용 그룹과의 메세나는 지금까지도 기업과 예술단체의 가장 아름다운 동행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처럼 홍연택은 예술과 행정이라는 두 분야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꾀하여 악단 발전의 초석을 다졌으며, 이러한 그의 열정은 오늘날 한국 클래식 음악계의 선도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소중한 기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