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위한, 정신과 육체 다듬기
지난 3월, KNSO국제아카데미는 바이올리니스트 가이 브라운슈타인의 마스터클래스를 시작으로 첫 포문을 열었다. 바이올린 부문에는 김문경·이현정·양지은이 참여했다. 2000년부터 13년간 베를린 필 악장을 지낸 그는 오케스트라가 주요 레퍼토리로 삼는 R. 슈트라우스의 ‘돈 주앙’, 베토벤 교향곡 3번 3악장 등을 발췌해 수업을 진행했다.
김문경은 이번 마스터클래스를 통해 “인지하지 못했던 평소 자세나 습관을 돌아볼 수 있었다”고 말했고, 이현정은 “소리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을 배웠다”고 했다. 양지은도 “고음에 대한 고민이 있었는데 음악적인 해결 방안을 주셔서 좋았다”고 말했다. 마스터클래스는 오는 하반기에도 이어질 예정이다.
지난 4월 20일에는 스위스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의 호른 수석이자, 취리히 예술대학 음악생리학 교수인 미샤 그륄을 초청해 ‘신체관리 및 마인드 컨트롤’이라는 주제로 워크숍을 열었다. 음악생리학은 이른 나이부터 악기를 시작하며 생긴 관절염·건초염 등 신체적 질환과 공연의 압박, 무대 공포증으로 인한 심리적 압박 등을 해소하고 예방하기 위한 학문이다. 수업은 연습·연주 후 경직된 근육을 이완시키는 법을 배우고, 상상 트레이닝을 통해 연주 전 긴장감 완화와 연주 개선을 위한 방법을 강연했다.
악기만 음악을 위한 도구는 아니다
정중앙의 공간을 비워 두고, 참가자들에게 요가 매트를 하나씩 나눠 주며 수업이 시작되었다. 미샤 그륄 교수가 매트를 깔고 신발을 벗으라고 하자 참가자들은 머뭇거렸다. 그가 “악기를 연주하기 전, 몸을 풀기에 좋은 운동은 ‘점프’입니다. 팔과 어깨를 편하게 하고 높이 뛰어볼까요”라고 하자 참가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연주자들에게 몸풀기란, 악기 조율로 시작해 스케일과 리듬 연습으로 마무리 짓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러한 몸풀기는 또 다른 긴장을 주기에 ‘몸풀기’에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 본격적으로 스트레칭이 진행되자, 땀이 났는지 머리를 묶는 이도 보였다.
이어 그륄 교수는 골반 모형을 꺼내 보여주며 등과 골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한다. “등에 샴페인 잔이 올려져 있다고 생각하고 엎드린 상태에서 시선을 아래에 두고, 왼쪽 팔과 오른쪽 다리를 드세요”라고 말하고, 이어 “표현을 위해 항상 가슴을 열어두라고 하므로 자연스럽게 등에 긴장을 주게 됩니다. 하지만 연주를 위해서는 가장 먼저 등을 이완해주어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유연하기 때문에 더 쉽게 망가질 수 있는 어깨와 팔을 풀어주기 위한 스트레칭, 앉아서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특성을 고려한 골반 스트레칭이 이어졌다. 끝으로 연주할 때 움직임이 가장 많은 손가락 운동이 진행됐다. 먼저, 손을 책상에 올려두고, 손가락을 들어 올린다. 이때, 반대쪽 손은 올라오는 손가락을 지그시 눌러주며 반대의 힘을 가한다. 각 손가락 당 5초씩 무게를 실어주고 나니 “시원하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마음으로 다듬는 음악
“우리가 상상하는 것이 곧 음악으로 표현되기에, 정신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륄 교수의 목소리는 한층 차분했다. 이제는 마음을 가다듬고, 상상력이 필요한 수업이기 때문이다. 그륄 교수는 참가자들에게 눈을 감으라고 했다. “악기를 꺼내고, 무대에 서서 연주하는 모습까지 상상해보세요. 그리고 나의 연주를 듣는 관객들을 떠올려보고, 다시 무대에서 내려와 악기를 악기 케이스에 넣습니다. 자, 눈을 뜨고, 어떠한 순간이 가장 강렬한 순간으로 그려지던가요? 가장 긴장된 순간은 언제인가요?” 호른을 연주하는 최유정이 “악기에 호흡을 넣었을 때”라고 답한다.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한 첫 호흡이 그에게 가장 강렬한 순간으로 다가왔다고.
이어 그륄 교수가 “다시 악기를 들고 있는 상상을 해봅니다. 악기를 쥐어보세요”라고 말하자, 허공 속에 가상의 바이올린, 호른, 심벌즈를 쥔 참가자들은 민망해했다. 하지만 그륄 교수의 표정은 어느 때 보다 진지하다. “내가 나의 코치가 되는 겁니다. 스스로 연주해보고 어느 것이 부족했는지를 짚어 보세요. 악상을 각각 다르게 표현해보고, 리듬에 집중하세요.” 참가자들은 저마다 현재 연습하고 있는 작품을 허공 속에 연주해 보였다.
수업을 마치고 참가자 김민영(첼로)·최유정(호른)·김명지(타악기)를 만나 보았다. 코어 근육을 키우기 위해 평소 PT(퍼스널 트레이닝)를 받고 있다는 김민영은 “연주 때 받는 스트레스와 상상 트레이닝을 통한 연습 방법까지 배울 수 있어서 색달랐다”라며 “그동안 음의 퀄리티에 집중했었는데, 상상 트레이닝을 통해 음악을 더 크게 볼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김명지는 수업 제목을 듣고 평소 그에게 필요한 것들이라고 생각했다고. 그는 “말렛이나 심벌즈 없이 상상에 맡겨 허공에서 연주하니 몸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소리가 어떨지 상상하게 되는 것 같아서 도움이 많이 됐다”고 했다. 최유정도 “확실히 도움이 됐다”라며 “연주 전에 상상 트레이닝을 한번 하면 어떻게 연주할 수 있을지 머릿속으로 그려지고 긴장도 완화될 것 같다”고 전했다.